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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렬 시인 세번 째 시집 '기척 없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이 투명해진다면 그것이 내가 찾아가는 자유의 길"

김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21/07/15 [15:54]

최준렬 시인 세번 째 시집 '기척 없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이 투명해진다면 그것이 내가 찾아가는 자유의 길"

김영주 기자 | 입력 : 2021/07/15 [15:54]

최준렬 시인이 세 번째 시집 '기척 없는 것들'을 냈다.

 

  © 도서출판 <애지> 刊

 

제1시집 '너의 우주를 받아든 손',  제2시집 '당신이 자꾸 뒤돌아보네'에 이은 이번 시집의 핵심을 차지하는 ‘기척’은 대부분 미처 우리의 의식에 닿지 않거나 “흔적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라 영원히 “오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기척 없는 것들 4」). 시인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세계를 탐구하며 기척 없이 다가오고 사라지는 물질들, 때로 무섭고 때로 따듯한 기척들에 대한 시선을 담백한 서정으로 그려낸다.
 
산부인과 의사이기도 한 시인에게 다가오는 기척은 죽음과 생명, 사랑과 이별의 정서와 연결되어 있다. “잠깐 머물러다 떠난” 기척들이 “귓속으로 들어와/쩌억-쩌억-/마음”을 “가르는 소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몸집을 한참 키우고 나서야” 죽음의 신호를 보내오는 암세포들, 세월의 퇴적층인 눈가 주름 등 단지 외형적이고 의학적인 차원의 표징뿐만 아니라 “입술이 보이지 않아”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러나 그 “가려진 입술에 일렁이는 잔물결”(「마스크」)과 관계되어 있다.

 

쉽사리 간과하기 일쑤인 ‘기척들’의 신비함과 숭고함에 주목하면서 그 의미나 존재의의에 대해 사유하고 숙고하는 모습은 사랑과 이별, 실향과 부재의 정서, 사모곡 등의 이미지와도 유기적으로 관계하며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과 불행이 겹쳐 있는 삶의 다채로운 이면을 보여준다.

 

해설을 쓴 임동확 시인은 “작고 미미한 어떤 흔적이나 기척을 통해, 형상을 갖지 않고 있는 변화하는 세계의 배후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미묘한 섭리 내지 낌새를 재빠르게 간파하여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 자세를 취한다는 점에서 의사와 시인의 역할은 동질적이다.”라고. “그가 고뇌에 찬 사유와 깊은 존재의 심연으로 모험을 통해 “찾”고자 하는 참다운 “자유의 길”(「시인의 말」)은 서로 다른 사건이나 존재들의 움직임들이 ‘차이를 통한 화합’ 또는 ‘통일 속의 차이’의 사태를 나타내는 ‘기척들’ 속에서 열린다.”고 말한다.


  ■ 추천사

 

최준렬 시인은 우리들의 불완전한 의식의 한계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불안전한 의식을 통해, “분만대”에서 “짐승처럼” “서럽게” 우는 “산모” (「분만실」)와 같은 고통스런 세계의 ‘기척들’과 함께 하는 시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분명 “묵직하고 따뜻한 생명”을 무사히 “산모”의 “가슴에 올려놓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한 명의 의사이자 모든 창조적 고통의 “산실을 지키는” 또 한 명의 성실한 시적 “산파”(「성탄절」)로서 하나의 ‘기척들’마다 우주의 목적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그러기에 그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처럼 “밤하늘의 별과/아지트 흙마당”을 “지그재그”로 동시에 “써 내려”(「좌左와 우右」)갈 수밖에 없는 ‘생명의 역설’을 주목하는 시인으로 우리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중이다. -임동확(시인)

 

  ■ 책속에서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잠을 깨던 방이 조용하네

커튼을 열면
어머니가 가꾸던 제라늄꽃
고개 들어 방안을 기웃거리네

주인을 찾는 애완견처럼
창문을 긁어대던
제라늄의 아픈 손끝

그 쓸쓸함 다독여주는
아침 햇살
                  ―「빈방」 전문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이
나를 흔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유령처럼 스치던 것들이
나를 주저앉힌다

지금은
환한 대낮

보이지 않아 피할 수 없고
볼 수 없어 대적할 수 없는 것들이
너와 나 사이에
큰 강물을 만든다

언젠가는 기적 같은 사랑이 다가와
너와 나 사이 가르는
물줄기 돌려 세우리니

짐짓,
오늘을 기록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 전문

 


매화 꽃잎을 툭, 치고 가는
봄바람을 본다

실은 바람의 기척을 본 것이다

겨울의 울타리를 넘어오는
봄의 왈츠, 꽃봉오리 터지는 소리도
내 영토 깊숙이 와 있다가
기별을 보내온 것이다

너도 예고 없이 내 곁에 왔다

네 웃는 얼굴이
내 마음에 쌓여가던 어느 날
너를 바라보던 내 심장이
격하게 요동치는 것을 보고 알았다

도무지 잡히지 않는 산불처럼
진달래꽃 파동에 물들어
뜨거웠던 사랑

기척 없이 다가온 것들이
때로는 따뜻했다   
                      ―「기척 없는 것들 2」 전문       

 


춘설,
3월의 햇살 속에서 눈부시게 내리는 눈

눈 속에 숨어든 봄비

모든 것들은
혼자 왔으나
혼자 사라지지 않는다

어머니를 화장하고 돌아온 날
분만실에서 아기를 받았다

꿈틀거리는 따뜻한
생명을 받아 안고
나는 울었다

어떤 기척이 찾아와
나를 흔들었는지
모른다
                      ―「기척 없는 것들 3」 전문   

 


산파가 되어
묵직하고 따뜻한 생명을
산모 가슴에 올려놓는 밤

산실을 지키는
향 촛불이 잠시 일렁였다

병원 앞 성당에서는
성가대의 우렁찬 노랫소리가
겨울 하늘을 흔들고

얼어붙은 별들이
놀란 듯 깨어나
흰 눈으로 날아와 창틀에 앉았다

생의 첫 울음과
눈물 글썽이는 엄마의 눈빛과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평화

태초의 말씀이 거기에 있었다
                      ―「성탄절」 전문   

 

 

강물에 떠내려온 것들은
장마의 행적을 복기한다

떠밀던 완력과
저항하던 것들과의 부대낌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내 안의 상처들을 이제야 바라본다

더 큰 물살이 밀고 들어와
침전된 것들
다시 떠오르게 하고 아귀처럼 할퀴면서
하류로 옮겨갈 것이다

격류 같았던 생의 한때
잠시 가라앉혀 두었던 화도
누군가 건드리면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분노도

강바닥에 쓸리고 쓸리면서
점차 작아지면서
하류로,
하류로 흘러갈 것이다
                      ―「다시 강가에서」 전문   

 

  ■ 차례


제1부
빈방/ 보이지 않는 것들/ 다시 강가에서/ 기척 없는 것들 1/ 기척 없는 것들 2 / 기척 없는 것들 3/ 기척 없는 것들 4/ 기척 없는 것들 5/ 재회/ 블루 마스크/ 동지冬至/ 어버이날/ 흉터를 읽다

제2부
백목련/ 퇴근길/ 개망초꽃/ 장맛비/ 분만실/ 성탄절/ 신사역/ 반딧불이/ 꽃집 여자/ 자궁 외 임신/ 알파카/ 부재중 전화/ 굿당 가는 길/ 장마

제3부
신호등 앞에서/ 마스크/ 청첩장/ 사춘기/ 납골당/ 아내의 신발/ 폭우 속으로/ 남편의 주방/ 섬/ 겨울 강가에서/ 소래산/ 도시의 별/ 술 취한 마음/ 복수초/ 해변의 묘지

제4부
부처님 오신 날/ 기억/ Happy drug/ 여름과 겨울/ 근전도 검사/ 일요일의 풍경/ 정서진/ 곗돈 타는 날/ 새해 아침/ 완경기完經期/ 좌左와 우右/ 가을에/ 일식日蝕

 

  ■ 시인의 말

 

나의 창문을
하나씩 열어 보여주는 일

욕망과 불안까지도 드러내는 일
부끄럽거나 망설여지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투명해진다면

그것이 내가 찾아가는
자유의 길이다
   

 

최준렬 시인


전북 부안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의대, 가천의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순수문학≫(수필)과 ≪문학세계≫(시)로 등단하였고, 산문집 '세상을 임신한 남자', 시집 '너의 우주를 받아든 손', '당신이 자꾸 뒤돌아보네'를 냈다. 현재 산부인과 전문의, 의학박사로서 경기도 시흥시 중앙산부인과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시흥 YMCA> 초대 이사장과 <시흥시민뉴스> 초대 발행인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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