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통에 빠졌다. 코는 이미 한도를 초과했다. 넘쳐서 머릿속까지 흘러들어온 아까시 향은 추억을 함께 묻혀서 왔다. 향긋한 꽃냄새에 취하고 추억에 취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놀던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
5월이라 아침저녁 바람은 선선하지만 아까시가 만발하면 한낮 바람에는 후덥지근함이 딸려온다. 이즈음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가지 않고 낙동강으로 달려갔다. 여벌의 옷은 당연히 없었고 수영복 따위는 더더구나 없었다.
당연하게도 속옷만 걸치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피부에 닿으면 차다는 생각이 드는 강물이었지만 수영을 하다 보면 금세 몸에 열이 나서 그 힘으로 한두시간은 넉근히 놀았다.
마른 돌 위에 몇 번 뒹굴뒹굴하면, 속옷의 물기가 덜어졌다. 그럼 그대로 겉옷을 걸치고 돌아왔다.
겨우내 찬 바람 맞으며 논에서 들에서 뛰놀던 몸은 물을 많이도 그리워했다. 그렇게 수영을 시작하면 가을이 익을 때까지 강에서 살았다.
성별은 구별이 없었다. 애초에 구별을 해 본 적없이 놀던 동네 친구였다. 많을 때는 십여 명이 되었다. 방학 때는 아침부터 줄을 지어 논길을 따라 강으로 갔다.
지나가면서 키가 제법 자란 벼의 잎을 꺾어서 풀피리를 불며 가기도 했다. 갈아 입을 옷을 챙겨 가면서 도중에 장난치다가 논에 빠뜨려 가자마자 빨래부터 한 적도 많다. 이때는 넓은 돌 위에 잘 펼치고 옷 위에 모퉁이마다 돌로 눌러 놓아야 했다. 마르면서 바람에 날려 가지 않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아서 터득하고 알아서 해결했다.
우리가 주로 수영하던 장소의 이름은 ‘큰소’였다. 비교적 물의 흐름이 잔잔하고 2m가 채 안 되는 깊이의 ‘작은소’에 비하여 물이 아주 깊었고 큰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는 높았고 평평했다. 초보자는 수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이빙을 했지만, 실력을 갖추면 꼭대기에 올라가 다이빙을 했다.
친구들이 단체로 다이빙을 하면 재미가 배가 됐다. 순환이 끝없이 이어졌다. 1.2.3.4를 외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뛰어내리고 또다시 바위를 올랐다. 그렇게 끝도없는 다이빙을 하기도 하고 하얀 차돌을 골라서 물속으로 던져 놓고 빨리 찾아오기 게임도 했다.
장마가 지거나 큰비가 오면 잠시 쉬었지만 인내심이 없던 우리는 아직도 성질을 그대로 지닌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래도 요령은 있었다. 바위를 목표로 건너갈 때면 원래 시작하던 지점보다 더 위로 가서 물살을 타고 비스듬히 건너갔다.
조준을 실패하고 예상이 빗나가서 멀리 내려가면, 당황하지 않고 그곳에서 길을 따라 되돌아왔다.
여름을 보내면 피부는 몇 번씩 벗겨졌다. 검다 못해 광이 났다. 선크림이 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귓속 가득 들어온 물을 빼주는 노하우도 있었다. 납작한 돌을 골라서 양쪽 귀에 대고 고개를 좌측 우측으로 꺾어가면서 꽁꽁 뛰면 물이 돌에 번진다. 그렇게 물을 빼줘서인가 귓병이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다.
7살부터 시작된 ‘큰소’에서의 수영은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이어졌다. 점점 갖춰 입는 속옷의 개수가 늘어났지만 습관처럼 일상처럼 이어지던 여름놀이였다.
어느 날, 가정 시간에 2학년 선배 언니들이 들어왔다. 오늘부터 ‘큰소’에서 여학생들은 수영을 금지한다고 했다. 남학생은 ‘큰소’에서 그대로 하고 여학생들은 ‘작은소’로 장소를 옮기라 했다.
가슴이 제법 커진 아이도 있고 성장이 빠른 친구들은 생리도 시작했으니 지금 돌아보면 당시에는 마땅히 그렇게 명령을 전했나보다 싶지만,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어번 ‘작은소’에 가서 수영을 하던 우리는 재미가 없기도 하고 같이 못 하는 친구들이 자꾸 생기면서 저절로 그만두게 됐다. 이후에는 수영과는 다소 거리가 먼 여름을 보냈다.
물론 2학년 가정 시간에 자율을 주길래 학교 바로 앞 보가 설치되어 있던 일명 ‘보뚝거리’에서 교복을 입은 채로 혹은 속옷만 입고 수영하다가 교무실에 불려간 적도 있다. 꿇어앉아 드나드는 선생님들이 내리는 꿀밤 세례를 받아냈다. 그것이 공식적 낙동강 수영의 마침표였다.
이 깊은 봄날, 아까시 향을 타고 문득 떠오른 수영의 추억. 이제는 중년이 되었고 누군가는 손자들이 생겼다. 슬그머니 떠 오르는 생각에 혼자 웃어본다.
언제 함께 모여서 수영을 해 볼까나. <저작권자 ⓒ 컬쳐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낙동강 아까시 향기,추억,수영 관련기사목록
|
종나미의 '도보여행'
많이 본 기사
종나미의 '도보여행'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