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03 기회는 어렵게 왔다. 그동안 수차례 접어야 했던 유럽 여행 계획을 마침내 실행에 옮기게 됐다. 일정을 어렵게 조정하면서도 내내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일상의 바쁨, 이로 인한 피로도가 쌓여있었지만 여행이 줄 새로운 깨달음이 있기에 견딜만하다 여겼다. 망설임 없이 선택한 패키지여행이었다. 귀를 열고 바지런히 따라만 다니리라 작정한 편한 여행.
드디어 인천 공항을 출발! 11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독일 뮌헨에 도착했다. 원래 시차가 8시간이지만 썸머타임을 실시하고 있어 7시간의 차이가 났다.
모차르트 이름을 건 호텔에 도착한건 해가 아직 지지 않은 시간. 6시가 겨우 넘었지만 거리의 상점은 이미 문을 닫았고 인적은 드물었다. 사람 구경은 카페, 레스토랑에서만 가능했다. 한적한 마을에서의 첫날밤은 여독을 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2018.6.04 실질적인 첫 일정은 잘츠부르크였다. 소금을 뜻하는 잘츠와 성곽·성을 뜻하는 베르크의 합성으로 암염의 산지였음을 이름에서 알려준다. 중간에 깼다가 5시 30분에 기상했음에도 컨디션이 좋았다. 아침 산책을 하고 마주한 호텔조식,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다.
창밖으로 푸른 초원이 이어지는 풍경은 카메라를 수없이 불렀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로 유명해진 미라벨 궁전 정원 관람을 시작으로 모차르트 생가와 지휘자 카라얀이 살던 건물을 지나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거쳐 성에 올랐다. 후니쿨라를 타고 호엔잘츠부르크성에 올라가 바라보는 전경은 매혹적이었다. 구·신시가지가 짤자흐 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고 멀리는 알프스 끝자락 조망이 가능하니 금상첨화다.
짧다. 이 좋은 전망을 누리기에는 시간이 적다. 옵션으로 30유로를 주고 올랐으나 쫓기듯 내려와야 하니 아쉬움이 커진다.
더 좋은 곳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확신을 안고 미련을 지웠다.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고요한 동네 잘츠캄머굿에 도착해 케이블카로 1552m 쯔뵐프호른산에 올랐다. 사면의 조망이 가능한 케이블카는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의 높이를 발아래에 두고 오르지만 멀리 보이는 유네스코 자연유산의 위용 덕에 두려움은 잊히고 그림처럼 펼쳐지는 자연에 감탄사만 연발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며 한가하게 음악 들으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타임이다. 28도라는 기온 속에서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빛을 감내하면서도 쉬 내려가고 싶지 않음은 적당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있고 함께하는 이가 있고 다시 보기 힘든 풍경이 있음이기 때문이었다.
전통 음식인 슈니첼로 점심을 먹고 볼프강 호수에서 유람선을 탔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숫가 마을인 할슈타트를 찾았다.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답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에는 주민수의 몇 갑절이나 되는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절벽을 타고 내려온 산기슭에 마을이 아래로 위로 형성되어 있는 풍경은 아기자기한 골목길만큼이나 특이한 모습이다.
주변의 모든 것을 다 담아낼 만큼의 크기와 맑음을 지닌 호수를 바라보는 마음이 평화롭고 넉넉해진다. 1유로라는 거금을 내고 유로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으로 오스트리아의 하루 일정을 접었다.
2018.6.05 산 속으로 산 속으로 굽은 언덕길을 올라 와 숨은 듯 자리한 호텔에서 묵은 두 번째 밤은 고요와 적막으로 깊어갔고 찬란한 아침 햇빛에 숲의 민낯을 드러낸 주변은 휴양림보다 더 많은 나무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 슬로베니아였다.
산뜻한 출발은 일행을 블레드 성으로 인도했다. 평화로워 보이는 호수의 도시 블레드, 중세에 지어진 오래된 성에 올라 조망을 누린다. 낯익은 그러나 생경한 풍경이다. 푸른 호수와 그 안에 오롯이 자리한 섬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에서 카메라를 들어도 작품이 나오는 곳이다.
호수에서 ‘플레트나’를 타고 섬으로 이동했다. 주민들이 직접 노를 저어서 운행하는 플레트나는 나무로 만들어진 배였다. 3대째 노를 젓고 있는 젊은 사공 친구는 키도 훤칠하고 용모도 준수했다. 신랑이 신부를 안고 오른다는 99계단을 홀로 가볍게 올라 소원의 종을 세 번 치고 시계탑까지 오르는 수고도 마다 않았다.
백조와 청둥오리들이 노닐고 수련들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널려 있는 호수에는 수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느끼한 맛이 있는 음식에 이어 크림 케이크가 디저트로 나왔다. 명물이라는데 내 입에는 아니었다. 결국은 두 개를 다 비우지 못했다.
세계적인 종유석 동굴로 유명한 포스토이나 동굴로 이동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마주하는 곳으로 20km나 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석회암 동굴이다. 동굴열차와 가이드 동행 도보로 5.2km 구간을 둘러볼 수 있다. 프로테우스라 부르는 인면어(人面魚) 구경을 끝으로 깊은 동굴 속에 자리한 콘서트홀과 매점에서 자유시간을 보내고 나니 하루의 관광 일정은 끝나고 또 이동이다.
입국심사대를 거쳐 크로아티아 오파티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도 해는 부드러워지지 않았고 바닷가에는 수상레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주변을 산책했다. 주변은 바닷가 도시의 해안 풍경과 그리 다를 바 없었지만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느긋한 여유가 느껴진다.
2018.6.06 새벽에 일어나 창밖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하현달을 구경했다. 쓸데없이 달을 담아 보겠다고 카메라를 꺼내 들기도 했다. 만점에다 플러스 점수까지 주고 싶은 저녁에 이어 아침까지 호텔의 음식은 만족스러웠다.
3시간이 넘는 이동을 거쳐 ‘라스토케’라는 작고 아담하고 예쁜 마을에 들어섰다.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민속촌이며 서부영화의 촬영지가 된 마을이었다. 50여 가구가 강물 줄기를 이용해서 정미를 하고 빨래를 하던 대단히 선구적인 마을이었다. 나폴레옹이 정복한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정원과 작은 박물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시간은 구석구석 둘러 볼 기회를 앗아갔고 이동을 요구했다. 인파를 뚫고 혹은 길게 줄을 따라 이동하는 번거로움을 견디며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둘러보는 것도 한 시간 남짓이었다.
송어구이로 나온 점심은 테이블마다 그대로 혹은 남은 양을 남겨두는 불상사를 빚었다. 현지상품 구매를 위해 매장을 잠시 들렀다가 자그레브로 향했다. 도시는 역시 도시였다. 교통체증이 느껴진다. 세계에서 제일 짧은 구간을 왕복하는 후니쿨라를 탄 후에 시내 구경에 나섰다.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벽의 출입문 중에 유일하게 남았다는 돌의 문은 1760년 재건축됐다. 1731년에 대화재로 소실이 되었지만 성모 마리아 그림만 온전히 남았다는 얘기가 전해져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내려오는 길에 넥타이 가게를 만났다. 크로아티아 용병 가족들이 이별의 아쉬움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묶어 준 스카프를 보고 루이14세가 무엇인지 물었고 대신이 크로바트라고 답하여 나라의 이름이 곧 타이의 이름이 된 것이라는 유래를 남긴 넥타이 가게는 사진을 찍는 장소로 인기몰이 중이었다.
시내에서 살짝 비껴있는 곳에서 묵는 하룻밤은 심심했다. 트럭이 즐비한 바깥풍경과 멀리보이는 도심에 비해 상가와는 떨어진 호텔건물. 결국은 스마트 폰이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줬고 무료함을 잠재웠다.
2018.6.07. 부다페스트 허기를 잠재우는 정도의 간단한 식사를 하고 부다페스트로 향하는 길. 국경을 넘는 심사대를 통과하는 일이 시간의 지체를 불러왔다. 버스기사의 법적 운전시간을 고려해 30분을 휴식하고 부다페스트로 직행했다.
현지 한국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으나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 포만감도 맛도 어느 것도. 현지 가이드를 만나 235m 높이의 겔레르트 언덕에 올랐다. 이태리 순교자의 이름을 딴 켈레르트 언덕은 전망이 그만이다. 한낮 태양을 머리에 이고 더위를 감수하며 여기저기를 조망했다.
짧은 이동으로 7개의 뾰족한 고깔 모양의 타워로 이루어진 어부의 요새에 올라 다뉴브 강을 내려다 봤다.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까지 시원한 조망이 허락되는 뷰 포인트다. 다뉴브 강 어부들이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나섰다는 설이 전해지는 어부의 요새는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 일행 덕에 줄을 선 유로화장실 대신 쉽게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성당 외관과 부다 왕궁을 둘러봤다. 30도에 육박하는 기온, 이글거리는 한낮 태양 아래에서도 용감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음은 언제 다시 올까하는 마음에서였고 책으로 혹은 미디어로 보고 듣던 역사적인 도시를 직접 보고 있다는 감격스러움 때문이었다.
놓친 일행을 찾으러 가는 해프닝을 두 차례나 겪는 추억담을 만든 후에 굴라쉬로 저녁을 해결하고 느긋하게 야경 감상에 나섰다.
해는 더디게 사라졌다. 썸머타임으로 인해 9시가 넘어도 어둠은 찾아 들지 않았다. 유람선을 타고 조금 지나니 건물마다 불이 들어왔다. 30분 동안이었지만 유람선을 타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감상하는 가슴은 벅찼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많이 등장하던 그 사진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눈으로 보는 느낌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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