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08. 늦은 밤 개구리 소리가 요란했던 도시 외곽 숙소를 떠나 비엔나로 향했다. 프라하 다음으로 기대를 하고 왔던 도시였다. 시간이 주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은, 가장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가 된 비엔나는 황홀했다. 쉰부른 궁전도 벨베데르 상궁도 지나치면서 만나는 건물들도 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듯 금방 잊어버렸던 합스부르크 왕조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듣는 것은 흥미로웠다. 특히,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비롯한 작품 감상은 발길을 떼기가 아쉬웠다.
다양한 고기가 소량의 야채와 함께 나오는 호이리게라 부르는 메뉴가 나온 점심도 대만족이었다. 오후에는 성 슈테판 성당과 중심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입장료가 5유로였지만 자유시간에 성 슈테판 성당의 343계단을 올랐다. 최초의 순교자 이름을 딴 슈테판 성당의 상부에서 내려다보는 사면의 도시 전경은 허벅지에 전해지던 고통을 잊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비엔나에서 커피는 마셔줘야 한다는 가이드의 조언이 있었으나 시간이 없어서 아이스크림으로 후다닥 아쉬움을 대신했다.
선택으로 비엔나 음악회가 있었지만 첫날 선택의 순간에 원하지 않았다. 피로도가 쌓인 상태에서 음악회라니 그건 아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는데 막상 선택한 일행들이 내리는 순간에는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 도시에서 듣는 음악은 색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2018.6.09. 숙소가 맘에 들었다. 특히 마을이 예뻤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과 골목이 있고 숲이 우거진 공원이 있었다. 슈베르트가 먹던 우물과 작품을 구상하던 곳이 있는 호텔은 작고 아담한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그렇지만 여행 중 가장 맘에 든 숙소였다.
아기자기한 마을 산책 후에 미련이 남았던 커피를 원 없이 마셨다. 그리고 꼭 다시 오기를 희망하면서 비엔나를 떠나 체스키크롬로프로 갔다.
작은 도시, 오래된 도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풍스런 중세도시 체스키크롬로프는 반나절의 시간을 찰라로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붉은 지붕이 주는 이색적인 느낌이 편안하게 와 닿았고 성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깊이가 그리 느껴지지 않는 강에서 보트를 타는 관광객들이 많았고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서양인보다 동양인들이 갑절이었다.
오후로 넘어서자 하늘이 해를 감췄다. 흐려지는 하늘에 맘이 급해졌다. 주차장은 멀고 우산은 챙기지 못했고, 게다가 긴 이동을 해야 하니 단체로 화장실도 가야했다. 동전교환부터 코인 넣고 화장실 들어가는 행동까지 일행들이 일사불란하게 최단시간에 움직여서 버스 탑승까지 비를 맞지 않았다.
소나기가 후다닥, 이번 여행에서는 계속해서 차 안에서 소나기를 바라보는 행운이 지속되고 있었다. 허나 프라하로 들어가는 시각부터는 정도가 심한 비가 그치지 않았다. 다행하게도 호텔에서 휴식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으러 나오니 비가 잦아들어 우산을 펼까말까 할 정도였다.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이 나온 저녁은 한식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충족시켰다.
프라하의 야경 구경은 정말 애간장이 탔다. 9시까지 구시가지 광장 주변을 맴돌아도 틴 성당에도 구시청사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며 가이드가 카를교로 우리를 인도했다. 드디어 그토록 와 보고 싶어 했던 장소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10년 전 지인들과 터키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다음 여행지로 선택했던 체코 프라하였다. 그 중에서도 카를교를 걷는 것이 로망이었다. 짧은 시간이 주어졌지만 다리를 끝까지 건너는 혼자만의 미션을 수행했다.
숙소에 와서도 멀리 보이는 프라하의 야경을 보면서 이 도시에 있다는 존재감을 재확인했다.
2018.6.10. 서둘러 나갔지만 프라하 성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와 입장하려니 가방 검색대에 줄이 길었다. 현지 가이드는 차분하게 헝가리와 프라하를 이해하기 좋게 도왔다. 그렇지 않아도 좋은 도시에 대해 이제는 나라까지 맘에 들게 한 가이드였다.
이제는 너무 많은 건축물을 봐서 어제, 그제 본 것과 오늘 보는 것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고 무뎌진 감각은 그냥 대단하다 정도로 감상이 짧아졌다. 하지만, 성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아름다움은 여전하여 스타벅스 루프탑에서 커피 한잔하면서 여유 있게 누리고 싶어졌다.
무표정, 정자세로 서 있는 근위병 옆으로 있는 정문 출입구 위에는 국민들이 아픈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TMJ라는 앞파벳이 왕관아래 있다. 마리아테레지아의 이니셜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를 받았음을 상기시키는 곳이다. 동질감과 함께 다른 방법으로 아픈 기억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비교 됐다.
‘스비치코바’라는 다소 입에 맞는 않는 현지 음식을 먹고 프라하 시내투어에 나섰다. 밤에 만났던 광경들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화면으로 천문시계의 작동을 알리는 모습을 보고자 구시청사 앞에는 인산인해였다.
골목과 광장 주변을 둘러보고 카를교를 다시 찾았다. 주말이라서인지 그곳도 인파로 북적였다.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 관광객들. 그 틈을 비집고 다시 다리를 왕복으로 거닐었다. 성 요한 네포무크 신부의 순교에 이어 그가 블타바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된 이야기와 카를교를 찾아 그의 동상 부조물을 어루만지면 소원을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는 많은 관광객들이 동상 앞에서 줄을 서고 있었다. 인파와 더위 속에서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결국은 프라하를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버스는 순식간에 프라하를 벗어났다. 국경을 넘어 독일의 뉘른베르크에 도착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숙소를 찾았다. 숙소는 일요일이라는 이유로 직원이 없었다. 주인이 없는 호텔, 엘리베이터도 정지였다. 건물 벽에 부착된 기계의 비밀번호를 누르면 룸 키가 나왔다. 낯설다. 예약 손님이 있음에도 온전히 사람이 없는 것도 알아서 손님들이 키를 받아서 묵는 시스템도, 우리 일행 외에 숙박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왔고 먼저 온 자의 여유와 호기심으로 지켜보니 익숙하게 혹은 몇 번의 실패와 전화 시도 끝에 겨우 키를 받아낸 손님도 있었다.
새로운 문화를 구경하는 신기함이 있었다. 작은 마을을 산책하고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나눠 먹으며 일행들과 여행 마지막 밤을 장식했다.
2018.6.11. 직원도 주인도 없던 숙소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새벽같이 조식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만족스런 아침 식사 후에 뷔르츠부르크로 이동했다, 낯선 이름이었고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기대감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막상 마주한 레지덴츠 궁전 앞에 조성된 공원과 3000년 동안 도시를 지켜왔다는 마리엔베르크 요새를 둘러보는 시간은 대미를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형형색색의 장미가 잘 가꾸어진 정원은 기하학적으로 깎아 놓은 잔디와 어우러져 관광객들의 셔터 누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새란 이름이 주듯 겹겹이 성벽에 싸여 있는 공간. 별다를 바 없는 건물 구경보다는 조망점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풍광이 더 좋았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나무는 높이가 낮았고 열매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하더니 눈에 들어오는 포도농장이 그 말에 무게감을 실어줬다. 프랑크부르트에 도착해 한식당을 갔다. 한 번도 한국을 찾은 적이 없음에도 한국말을 제법 잘하는 네팔 젊은이들이 서빙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짧은 시내 투어에 나섰다. 넘쳐나는 중국 관광객 틈에서 프랑크푸르트 시청사와 괴테 생가를 찾았다. 로맨틱 가도(街道)가 이어지는 바깥 풍경,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 낮은 지붕을 이고 모인 집들이 아담한 마을을 이루는 풍경. 이제는 익숙해진 그래서 무뎌졌나 싶던 감각이 그래도 살아나는 순간이 생기게 만들었다. 바깥 풍경 감상에 젖다보니 길었지만 순간이었던 8박 9일의 일정이 끝점에 와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돌아감이 실감난다. 슬슬 일상으로 돌아가도 괜찮다는 내 안의 회귀본능이 돌아가는 마음을 가볍게 했다. 일상이 좋고 행복하다는 결론을 얻게 하는 여정의 마무리. 비 내리는 공항. 느긋하게 커피를 나누며 생면부지로 만났던 일행들과 작별의 아쉬움을 나누는 시각, 마음은 이미 한국에 먼저 가 있었다. <저작권자 ⓒ 컬쳐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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